전체 글 60

용수, 세상살이 수행은 인욕바라밀

세상살이 수행은 인욕바라밀입니다. 억울함을 수용하는 거예요. 비인간적인 사람들 가운데 인간적으로 사는 거예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 이타심을 연습해요. 상식이 없는 사람 가운데 상식을 가져요. 냉정한 사람 가운데 따뜻한 거예요. 태도만 바꾸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에요. 지옥을 천당으로 만드는 것, 구속에서 자유케 하는 것, 태도입니다. "만사에 감사합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만사에 감사합니다."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똑같이 겸손하게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무 문제없어요." 문제를 부인하고 없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문제에 대한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불평불만이 없어요. 짧게 자주 외워보세요. 평생 화두로 삼아 보세요. 용수 스님 facebook에서(2021...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봄이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은데... 눈이 푹푹 나리는 밤을 생각한다. 슬픔이 또 찾아오고... 나타샤가 나를 위로하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축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

이만교, <완성되지 않은 일기>(동시마중, 제65호)

선생님, 보드 타다 넘어져 무릎이 까였거든요. 그래서 재수 없는 날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엄마는, 까불다가 넘어졌겠지! 신경질부터 냈어요. 그래서 속상한 날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아빠가 까진 무릎을 보더니 새 보드를 사 주겠대요. 그래서 앗싸, 땡 잡은 날이라고 써야지 했지요. 근데 안 사 줄지도 몰라요. 자전거도 사 준다고 하고 아직 안 사줘요. 그러면 짜증나는 날이라고 써야 하잖아요. 하지만 약속했으니까 사 줄 거예요. 그러면 진짜 좋은 날인 거죠. 어쨌든 아직은 오늘이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모르겠어요. 결정되고 나서, 그때 쓰면 안 돼요? 이만교, 완성되지 않은 일기(동시마중, 제65호), p.62 (출처: pixabay)

김경미, <나는야 세컨드>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남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 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내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 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

끝맺음

내 문장에는 가끔 주어가 없다. 그리고 자주 주어와 서술어가 따로 말을 한다. 정말 한 문장을 작성하는 시간 동안 주어를 잊어버리는 걸까. 내 마음은 한 문장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앞의 문장을 생각한다거나 앞으로 쓸 문장을 생각한다거나 한다. 그래서 주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정확히,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또 내가 가진 서술어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아는 것이 없을수록 단정 짓고 싶어 하며 빠르게 진리가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서술어에 드러나서 이것이 옳고, 이것이 맞는다는 단정적인 서술어가 등장했다. 주어가 없는 문장들은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에서 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잘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이다. ..

사유중지의 경[Vitakkasaṇṭhānasutta]

『맛지마니까(Majjhima Nikāya)』 「사유중지의 경[Vitakkasaṇṭhānasutta]」, 전재성 역주 p. 275-279 3.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세존]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보다 높은 마음을 닦으려면, 때때로 다섯 가지 인상에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 다섯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4.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어떤 인상에 관해 그 인상에 정신적 활동을 일으켜 자신 안에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되고,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이 일어나면, 그는 그 인상과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가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키면,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

외로움 2탄

외로움이 강렬해질수록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고떨어지는 물방울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외로움은 노트 위에 빼곡한 글씨들이 줄줄이 쌓여 한 권이 되고노트의 무게만큼 외로움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외로움은 타인의 미소에도 그 사람이 애달파 눈물이 나게 한다.사실은 자신이 애달픈 걸까? 다가서기도 했다가 물러서기도 했다가 도망치게도 만드는 외로움은나를 이런 사람이게 했다가 저런 사람이 되게도 했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외로움일까?외로움 때문에 한 경험들이 나를 키웠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외로움.

전재성 역주(2019), 『이띠붓따까-여시어경』, 사유의 경

38(2-2-1) 사유의 경[Vitakkasutta]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고 거룩한 님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는 두 가지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안온에 입각한 사유와 멀리 여읨에 입각한 사유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에게는 폭력을 여읜 희열과 폭력을 여읜 열락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바로 그 폭력을 여읜 희열과 폭력을 여읜 열락이 있는 여래에게는 '어떠한 행동으로든 어떤 누구도 동물이건 식물이건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러한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여래에게는 멀리 여읨의 희열과 멀리 여읨의 열락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바로 그 멀리 여읨의 희열과 멀리 여읨의 열락이 있는 여래에게는 '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