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 <獨酌> 獨酌 류 근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진실로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눈 감고 독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주는 것이다 그럼므로 사람아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지르고 운다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시 2021.10.06
'티베트 스님의 노 프라블럼'을 읽고 책 표지를 보았을 때, 사진이 많고 짤막하고 의미가 있어 보이는 글을 한 권으로 묶어 놓은 책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떤 것을 경험하기 전에 내가 가진 정보를 통해 판단하고 결정짓는 일은 실재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전반은 불교에서 말하는 유신견(有身見)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또 그것이 세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없음’ 즉,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우리가 몸을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관념을 시작으로 이원론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는 단순한 작업(명상)을 있는 그대로.. 책을 읽고 난 뒤 2021.10.05
점심 시간 5분 명상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인턴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걷던 중. 갑자기 통화를 해야 한다며 내 옆을 후다닥 떠났다. 급- 홀로 남겨져서 어리둥절하다가 몇 발자국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잠깐 명상이나 해볼까 하며 타이머를 켰다. '오분만' 점심시간이라 왔다갔다하는 직원들의 눈이 신경 쓰였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신경 쓰고 있음을 알아차리면서 눈을 감았다. 땡- 종이 울렸다. 눈을 감았지만 의식은 밖을 향해있다. 타인의 발소리, 말소리를 의식하고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심장은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일어나 그냥 걷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5분이 흘러 눈을 떴을 때 주변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낯선 곳에서 시작한 5분의 명상으로.. 명상 하던 중에 일어난 일 2021.06.24
김형경, 만 가지 행동 122쪽-123쪽 훈습 기간에 내가 중얼거린 말 중에 '무력한 채로 머물기'가 있었다. 이집트뿐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부정적 감정을 투사하거나, 문제를 외재화하거나, 공격성을 행동화하는 경우와 맞닥뜨리게 마련이었다. 그럴 때 그 사실을 회피하거나 부인하지 않으면서, 가학적으로 보복하거나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무력한 채로 머물기'에는 억울함을 감수하기, 나를 해명함으로써 타인을 통제하려 하지 않기의 세목이 있었다. 훈습 초기에 중국에서 택시 기사가 잔돈이 없다고 말했을 때 기어이 거스름돈을 받아 낸 일이 있었다. 그때는 무의식에 억압해온 분노를 인식하던 시기여서 그 행위에도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후 내가 정당하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기타 2021.06.24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113쪽 김기배(김동준 사건 담당 노무사) 인터뷰 중... ‘팩트’라는 이름으로 현상을 확인하는 식의 사고 방식은 우리의 인식을 가로막아서, 드러난 것에만 집중하게 하고 그 아래, 구조를 바라보지 못하게 해요. 그 밑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래가 보일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기타 2021.06.18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그녀가 과제로 내준 에세이들이 좋았고,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을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는 느낌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할 때 행복했고, 나는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기타 2021.04.22
용수, 세상살이 수행은 인욕바라밀 세상살이 수행은 인욕바라밀입니다. 억울함을 수용하는 거예요. 비인간적인 사람들 가운데 인간적으로 사는 거예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 이타심을 연습해요. 상식이 없는 사람 가운데 상식을 가져요. 냉정한 사람 가운데 따뜻한 거예요. 태도만 바꾸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에요. 지옥을 천당으로 만드는 것, 구속에서 자유케 하는 것, 태도입니다. "만사에 감사합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만사에 감사합니다."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똑같이 겸손하게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무 문제없어요." 문제를 부인하고 없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문제에 대한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불평불만이 없어요. 짧게 자주 외워보세요. 평생 화두로 삼아 보세요. 용수 스님 facebook에서(2021...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기타 2021.03.19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봄이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은데... 눈이 푹푹 나리는 밤을 생각한다. 슬픔이 또 찾아오고... 나타샤가 나를 위로하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축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시 2021.02.22
출생이 아니라 행위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십시오. 어떠한 땔깜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일지라도 성자는 지혜롭고, 고귀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제합니다. Stn. 462, 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15), p.371 초기불교 경전/쿳다까 니까야 2021.02.06
이만교, <완성되지 않은 일기>(동시마중, 제65호) 선생님, 보드 타다 넘어져 무릎이 까였거든요. 그래서 재수 없는 날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엄마는, 까불다가 넘어졌겠지! 신경질부터 냈어요. 그래서 속상한 날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아빠가 까진 무릎을 보더니 새 보드를 사 주겠대요. 그래서 앗싸, 땡 잡은 날이라고 써야지 했지요. 근데 안 사 줄지도 몰라요. 자전거도 사 준다고 하고 아직 안 사줘요. 그러면 짜증나는 날이라고 써야 하잖아요. 하지만 약속했으니까 사 줄 거예요. 그러면 진짜 좋은 날인 거죠. 어쨌든 아직은 오늘이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모르겠어요. 결정되고 나서, 그때 쓰면 안 돼요? 이만교, 완성되지 않은 일기(동시마중, 제65호), p.62 (출처: pixabay) 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시 202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