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난 뒤

'티베트 스님의 노 프라블럼'을 읽고

lay_lee 2021. 10. 5. 17:14

책 표지

 책 표지를 보았을 때, 사진이 많고 짤막하고 의미가 있어 보이는 글을 한 권으로 묶어 놓은 책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떤 것을 경험하기 전에 내가 가진 정보를 통해 판단하고 결정짓는 일은 실재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전반은 불교에서 말하는 유신견(有身見)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또 그것이 세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없음’ 즉,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우리가 몸을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관념을 시작으로 이원론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는 단순한 작업(명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3장 '모든 것에 만족하는 사람'에서는 명상하는 이의 태도 즉, 마음가짐에 관해 말한다. 명상하는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관해 ‘이랬으면 행복할 거야, 저러랬으면 행복할 거야’하고 도망치는 습관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점검하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호흡을 바라보는 단순한 방법으로 내게 많은 환상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 같다.

 

열린 마음은 자아에 대한 도전입니다. 자아는 항상 무언가를 붙들고 싶어 합니다. 자아에게 있어 미지의 것이란 악몽입니다. (57쪽)
하나의 환상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에 환멸을 느끼고 촉각을 곤두세운 채 또 다른 환상을 찾아 헤맵니다. 이때 우리는 이전의 환상을 연상시키지 않고 실망도 주지 않을 환상을 찾습니다. (187쪽)

 

나는 20대에 세상에 불변하는 진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 불변하는 진리를 찾으면 내 안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서 풀어낼 것이라 여기며 ‘이것이 다이아몬드인가? 저것인 다이아몬드인가?’하며 열심히 무언가를 찾았던 생각이 난다. (공부, 연애, 종교, 친구, 직장 등등….)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빛을 만난 듯 기뻐했고, 거기서 진리가 아니라는 흠집을 발견이라도 하면 곧 죽을 것처럼 절망했다.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사람, 변하지 않는 직분에 매달리며 환상을 쫓았던 시간은 고난이었고 실망의 연속이었다. 자아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와 잘 모르는 것에 관한 두려움으로 열심히 방어기제를 쌓아 올렸다.. 그렇게 고통에 빠져 한참을 살아가다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여태 떠돌았구나’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이 책에서도 76쪽 ‘평상시의 집착심을 아주 놓지는 말라고. 그랬다가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 위협합니다’라고 자아가 나에게 하는 일을 자주 언급한다.

 

현실에서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나는 나의 정체성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일어났는데.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가상 정체성을 이용하되 집착하지 않는 기술입니다. (112쪽)”라고 말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정신적인 사건들이 모여 엉킨 덩어리이며 실체가 없고 찰나적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에는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에도 집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완벽한 순간입니다. (132쪽)”

 

 

수행의 과정은 ‘내가 있음’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개인의 경험을 통해 점차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실체는 어떤 큰 덩어리가 아니라 매 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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