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시

박준, <그해 봄에>

lay_lee 2020. 4. 30. 12:20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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