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시

이원, <뛰는 심장>

lay_lee 2020. 5. 3. 19:57

뛰는 심장

 

이원

 

 

소리 내지 말자 귀들이 다 없어지도록

 

칼날을 내부의 사랑이라 하자

피 묻힌 손으로 얼굴을 지우고 있다 하자

얼굴은 점점 선명해졌다 하자

 

그 어떤 소리도 없다 하자

말들은 모두 울다 잠들었다 하자

미친 사람은 울부짖던 말에 칭칭 묶였다 하자

묶은 것이 지상의 사랑이라 하자

사랑은 사로잡힌 것이라 하자

사로잡힌 것에 타들어갈 수 있다 하자

 

미친 사람은 씻지 않고 검어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몸에서 놓여난다

밝아오는 것은 묶인 것이다

허공은 다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라 하자

 

숲길은 세상에 없다 하자

 

숲길은 세상에 있다 하자

배가 제일 고파질 때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라 하자

죽음은 맨 끝의 식욕이라 하자

가장 절박한 식욕이라 하자

 

생존이었다면

 

굶주림은 제 입도 같이 씹었다

 

제 살을 쉴 새없이 삼키며 돌아갔다

나온 곳으로

 

거기가 시작이었다 하자

거기를 봄이었다 하자

거기에서 숨이 아예 막혔다 하자

거기에 항문을 빠뜨리며

호명을 빠져나갔다 하자

절연이라 하자

 

몇 날 며칠이고 땅을 팠다하자

뼛가루를 묻은 땅을 두드렸다 하자

나오지 마라

여기로 다시는 나오지 마라

틈을 막아버렸다 하자

입만 삼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자

 

오도 가도 못하는 허기가 몇 년째 목구멍에 걸려 있다 하자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은

목구멍의 불편함이라 하자

 

세상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목구멍이 잠시 뚫린 것이라 하자

 

그 순간 뛰어올랐다 하자

다 잃어버리고 남은 손 두 개와 발 두 개라 하자

손 두 개와 발 두 개만 남기고 싶은 거라 하자

텅빈 곳에서 뻗어나간

손과 발은 그 누구의 뜻은 아니었다 하자

아무 뜻도 아니었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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