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살고 싶은 문장들/시

이만교, <완성되지 않은 일기>(동시마중, 제65호)

lay_lee 2021. 1. 25. 10:35

 

선생님, 보드 타다 넘어져 무릎이 까였거든요.

그래서 재수 없는 날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엄마는, 까불다가 넘어졌겠지! 신경질부터 냈어요.

그래서 속상한 날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아빠가 까진 무릎을 보더니 새 보드를 사 주겠대요.

그래서 앗싸, 땡 잡은 날이라고 써야지 했지요.

 

근데 안 사 줄지도 몰라요. 자전거도 사 준다고 하고 아직 안 사줘요.

그러면 짜증나는 날이라고 써야 하잖아요.

 

하지만 약속했으니까 사 줄 거예요.

그러면 진짜 좋은 날인 거죠.

 

어쨌든 아직은 오늘이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모르겠어요.

결정되고 나서, 그때 쓰면 안 돼요?

 

 

 

이만교, 완성되지 않은 일기(동시마중, 제65호), p.62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