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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히리 프롬, 장혜경 옮김

lay_lee 2020. 5. 2. 18:27


에히리 프롬, 장혜경 옮김 (2020),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나무생각





목차

서문 - 라이너 풍크


01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한다

02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03 진짜 자유는 진짜 인격의 실현이다

04 자아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하다

05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시장에 내다 판다

07 진짜와 허울의 차이를 보다


참고문헌

출처






p. 20


사랑이란 그 사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온전함과 현실을 둘 다 보존하는 유일한 형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복종하거나 그에게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사랑'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람은 - 상대에게 복종하는 사람이건 상대를 지배하는 사람이건 - 자신의 온전함과 독립이라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상실한다. 진정한 사랑에서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존된다.




p. 28

무엇을 질병으로 불러도 되는지를 주입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할 수 없어 괴롭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다고, 직장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허용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질병의 표현 형태로 가능한 온갖 것들을 들먹인다.




p. 30

인간은 자신을, 자기의 확신,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자기 고유의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타인들과 구분되지 않을 때 자신과 일치한다고 느낀다. 타인들과 순응하지 못하면 끔찍한 고독이 닥칠 것이며 집단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 느낀다.



P. 32


이제 문제는 '내 집은 내 성'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사생활을  누릴 수 없는 무능력이다. 반드시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이것을 우리는 '소속감', '팀워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 자신이나 이웃의 은둔을 참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다.



P. 190

우리는 우리의 탐욕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분노가 강요하는 대로, 우리의 어리석음이 상상하는 대로 상대를 왜곡한다.




P. 192

하지만 어떤 사람의 구체적인 고통이나 행복을 대면하는 나는 피상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적당한 감정을 '생각'해서 적당한 행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거리를 유지한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반응하고 응답한다는 말은 나를 아프게 하고, 기쁘게 하고,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는 내 모든 인간적 힘을 총동원하여 응답한다는 의미다. 그럴 때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향하고 나의 응답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머리나 눈이나 귀로 응답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온 인격으로 응답한다. 내 온몸으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본다. 어떤 대상에게 내 안에 존재하는 실제의 힘으로, 그야말로 응답의 능력을 가진 온 힘으로 응답한다면 그 대상은 대상이기를 멈춘다. 나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 더 이상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게 된다. 나는 그것의 재판관이 아니다. 이런 식의 응답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는 완벽한 관계의 상황에서 가능하다.


이렇게 보고 응답하고 인식하고 인식 대상을 알아보는 감각을 갖추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진짜 삶의) 첫 번째 조건은 감탄의 능력이다.

....중략...그를 창조적 학자로 만드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해결 능력은 극히 일부일 뿐, 보통의 학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을 보고 감탄하는 그의 능룍이 그를 창조적이게 했다.


P.194

(진짜 삶의)두 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중략...진정으로 집중을 할 때는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건, 어떤 글을 읽건, 산책을 하건, 이 모든 일을 집중해서 한다면 나에게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에서 산다. 하지만 실제 경험으로서의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P.198

(진짜 삶의) 또 한 가지 조건은 회피하지 않고 양극성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이런 생각은 갈등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 된다. 현대의 교육은 그 전체가 아이에세거 갈등의 경험을 덜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모든 것을 수월하게 해주고 아이를 정성껏 보살핀다. ...중략...

갈등은 감탄의 원천이며, 자신의 힘과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원천이다. 갈등을 피하면 인간은 마찰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된다. ...중략... 개인적이고 우연한 갈등도 존재하지만 인간 실존에 깊이 뿌리내린 갈등도 존재한다. 


P. 201

평등이란 우리 모두가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인간적 존엄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차이를 개발할 권리가 있지만, 그 차이를 타인을 착취하는 데 이용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뜻이다. 


p. 201-203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탄생은 아이가 태아로 존재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숨 쉬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단 한 번의 과정이 아니다. ...중략...

 인간은 인간 고유의 이분二分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안전을 의미하는 과거 상태의 포기를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힘을 더 자유롭게, 더 완전히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상태에 도달하고자 한다. 인간은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고 완전히 새로 태어나고 싶은 소망 사이를 항상 이리저리 오간다. 모든 탄생의 행위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놓아버릴 용기, 자궁을 포기하고 엄마의 가슴과 품을 떠나며 엄마의 손을 놓고 마침내 모든 안전을 버리고 단 하나, 즉 사물을 실제로 인식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자신의 힘만을 믿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태어날 준비 -모든 안전과 착각을 포기할 준비- 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성경에 나온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말하는 용기, 즉 자신의 나라와 가족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갈 용기다. 자신의 사고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관련하여서도 진리 말고는 그 무엇도 추구 하지 않겠다는 이런 용기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만 가능하다. 여기에서의 믿음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믿음, 즉 과학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이념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구약에서 믿음을 칭하는 단어 '에무나 emuna'가 확신을 뜻하는 것과 같은 믿음이다. 사고와 감정에서 자기 경험의 현실성을 확신하고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